이스라엘: 교회를 위한 예언적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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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여러 면에서 열방 교회를 위한 비유입니다. 한 편으로는 분명 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완성’, ‘완전’, 궁극적으로 ‘평안’이라는 거룩한 약속의 수혜자인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우리가 잘 아는 “샬롬”이라는 히브리 단어의 어근 ” שלם “에서 파생된 단어들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물론, 이스라엘과 교회 둘 다 성령의 권능과 지휘 아래 큰 진전을 보았지만, 아직도 극복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1. 절충된 상태: 이스라엘과 교회 둘 다 다른 신, 종교, 철학, 가치 등의 가치관과 영향력으로 절충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한 때 주류 기독교 국가들 모두에 침투하고 있는 이슬람의 영향력이 공격적으로 유대-기독교 사회의 토대를 대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인 세속주의가 하나님을 변방으로 밀어내 결국 아예 없애버리려 하고 있으며, 동양의 영성과 그와 연결된 마약 중독은 만족감이라는 거짓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2. ‘점령된’ 상태: 이스라엘과 교회 둘 다 어느 정도 하나님 욍국의 대리자들이 아닌 공식적인 제도권에 의해 점령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요구에 의한 낙태를 제공해주는 이스라엘 국가 공권력이든, 예슈아의 메시아이심을 부인하는 종교적 공권력이든, 유대인들을 ‘인종 청소’하는 정권이든, 적극적인 동성애나 보편주의 신론을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교단이든, 모두 하나님 왕국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반하는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3. 규모에 이르지 못한 상태: 이스라엘과 교회 둘 다 아직이르러야 하는 규모가 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5:18에서 하나님께서는 남쪽으로는 오늘날의 수에즈 운하로부터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까지의 온 땅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전 세계 메시아의 몸에는 하나님께서, 복음이 모든 민족에 전해짐에 따라 (마 24:14, 계 7:9), 마지막 때 대추수 (암 9:13)를 약속하셨습니다.
  4. 실현되지 못한 잠재력의 상태: 교회와 이스라엘 둘 다 아직 전 세계적인 영향력과 효력이 충만함에 이르는 것, 즉 지상에 하나님 왕국이 임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것으로 분명히 따로 구별되고 (신 26:18-19) 교회가 다스리는 (계 20:4, 단 7:22) 것을 보아야 합니다.
  5. ‘즉위하지 못한’ 상태: 우리는 아직 교회가 지구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것 (단 12:10), 혹은 예슈아께서 예루살렘에 그분의 영광스러운 왕위에서 다스리시는 것 (롬 11:26, 사 24:23)을 보아야 합니다.

비유의 목적은 교훈입니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진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봅니다. 이것을 아시고, 가장 위대한 스승께서, 마음과 정신에 감동을 주고 우리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 호소하는 비유, 이야기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비유라면, 세상이 이스라엘의 발전과 그 땅, 특히 수도 예루살렘을 놓고 벌이는 전쟁이 과열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교회는 거기서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신뢰 받으실 만하며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수 있는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스라엘이 싹이 나고 지금은 꽃이 피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 27:6). 하나님께서 큰 반대 가운데에도 이스라엘을 일으킬 수 있으시다면, 그분께서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믿는 자 각 사람을 일으킬 수 있으십니다.

교회가 이스라엘로부터 배울 수 있듯이, 이스라엘도 교회의 길고 복잡한 역사에 담긴비유로부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 각 회중, 전 세계 메시아의 몸으로 하여금 절충된 상태를 떨치게 하시고, ‘점령된 상태’를 극복하게 하시며, 우리의 온전한 ‘규모’와 잠재력에 이르게 하시고, 예슈아께서 계셔야 할 곳에 즉위하신 것을 보는 데에까지 이르게 하실 수 있으신 신실하시고 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역할은 집중하여 주시하며 주의를 기울여 주님과 협력하여, 다가오는 시련 (마 24:21)을 통과해가는 길이 정신적 충격이기보다, 예슈아께서 바로 우리 편에 계시는 것을 볼 것이기에 (마 25:1-13), 기쁨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니 코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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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18-02-26T04:45:03+00:00 2월 14th, 2018|분류되지 않음|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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