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뉘지 않은 마음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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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뉘지 않은 마음 (1)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원어: 이리저리 끌려가다*)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메림나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0:38-42)

여기서 우리는 나뉜 마음(마르다)과 나뉘지 않은 마음(마리아)을 묘사한 그림을 봅니다. 메시아의 몸 안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내적으로는 마음이 나뉘었고 외적으로는 많은 활동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이렇게 바쁜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할 것이라 생각하고, 주님의 발 아래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바쁜 사람들 곁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마르다 같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모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로에게 “나에게 예배하도록 내 백성을 가게 하라”고 선포했을 때, 바로는 사람들이 게으르다고(히브리어 “한가한”), 그래서 그들이 주께 제사 드리기 위해 그들의 일을 버리려 한다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일꾼/노예 상태에서 예배자/제사장이 되도록 바꾸고 싶으셨습니다. 바로(사탄의 유형)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마에 땀을 흘리며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일 같이 “좀 더 건설적인” 것으로 바쁘기 보다 “단지” 주님을 예배하는 것은 게으름이라고 확신시키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님을 예배하는 것은 허영 혹은 게으름이며, 하나님 왕국의 확장에 있어서도 해야 할 좀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확신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세와 백성에게 이집트(세상)를 떠나 산에서 당신 앞에 절기를 지키러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바로는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광야 뒤편에 있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지금 원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확신시키려고 그들에게 노동을 더 무겁게 합니다(출 5:1-9).

그러나 마리아는 나뉘지 않은, 산만하지 않은 마음으로 주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는 ‘섬겼지만’, 마리아는 ‘들었습니다.’ 마르다는 섬기며 이리저리 끌려 다녔지만 (그리고 불평했지만), 마리아는 앉아서 들었고 그녀가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믿는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정말로 들을 정도로 오래 앉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 산만하고 마음이 나뉘어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레마)으로 살 것이라(마 4:4).”

마리아는 그녀의 진짜 삶은 풍요로운 하나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그 입의 말씀을 듣는 데에 있는 것이지 썩어 없어질 빵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녀의 음식은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우선 되는 진짜 필요는 당신의 발아래 앉아 그 말씀을 듣는 것임을 아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도록 인도하시는 모든 것에서 주님께 대한 우리의 섬김은 후에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부은, 그래서 갈보리 사랑의 향기로 온 세상을 가득 차게 했던 마리아의 온전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마리아의 행동이 낭비라고 비난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녀가 그분의 장사를 준비하여 그렇게 한 것이므로 그녀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마음과 뜻과 하나님의 타이밍에 온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주님께서 세상을 위해 죽으실 것을 그녀의 마음으로 듣고 그분의 장사를 위해 그분의 몸에 기름 부을 사람이 될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앞날을 위해, 그리고 주님께서 오심에 대해 우리와 다른 사람을 준비시킬 지금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의 발아래 충분히 오래 앉아서 듣고 있습니까?

참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한 부분은 주님께, 또 다른 부분들은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는, 나뉘고 산만한 마음에서 흘러나올 수 없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잴 줄도 모르고, 최소한도 모르고, 그 모든 마음을 주님께 펑펑 쏟아 붓는 온전히 치유된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바로 그 본질상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결코 일부만 흘러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염려/나뉜’이라는 단어의 다른 어근)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마친; 온전한; 성숙한; 그리스도 자신)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9)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우리가 마음에서 모든 나뉨을 버릴 때, 우리가 우리의 완전한 유산 안에서 완전히 회복되고 온전한 새로운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걸어가기를 진실로 원하고 기꺼이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을 희미하게 보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려진 대로 알 것이고 우리의 상처 나고 분열된 옛 자아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마음을 따라 서로를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들고 온전함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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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20-01-06T15:14:46+00:00 1월 6th, 2020|분류되지 않음|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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