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향한 예언적 말씀

This post is also available in: English Français Deutsch Español Português Nederlands 简体中文 Italiano 日本語 Čeština Dansk

미국을 향한 예언적 말씀

여러분, 32년 사역하면서 저는 한 번도 국가에 대해 1인칭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같은 말씀을 나눌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오늘 텔아비브에서 아쉬켈론으로 운전하고 가는 중에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게 이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네가 (온라인 몇몇 게시글에) 너의 정치적 견해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마음을 들을 있도록 네가 예언을 하기를 원한다.”

그런 다음 제게 당신의 마음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을 적었습니다. 아래에 적힌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제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신약의 예언은 언제나 부분적이며(고전 13:9), 개개인의 성격을 거쳐 걸러지며, 다른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지만,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살전 5:20-21). 따옴표에 넣지 않은 것은 제 말입니다.

저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겸손히 말을 메시아의 몸에 아룁니다.

아래는 제가 성령께 받은,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고 분별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우든 좌든 한 편을 택해야 할 테지만, 나는 정치적으로 우나 좌가 아닌, 위에 하늘 보좌에 앉아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메시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메시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메시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 3:1-3)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사 55:8)

“너희는 ‘그렇지만 이것은’ ‘그렇지만 저것은’ 말하겠지만, 나는 너희의 순종을 보고 있다. 가난하고 아프고 상한 사람들에 대해 내 말은 뭐라고 하느냐? 정치적으로 한 편을 택하라고 하느냐? 아니면 가난하고 아프고 상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하느냐? 나의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은 우파나 좌파의 해결책이 아니라 나의 은혜와 능력을 풀어놓을, 위를 향한 해결책이다.

“‘백인 교회’가 찾고 있는 부흥의 비결은 백인 교회가 나의 사랑과 치유하는 능력과 [경청, 섬김, 그리고 가능하다면 멘토링, 개인 교습 같은] 실질적 도움을 가지고 흑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나는 너희 삶을 그들과 나누도록 너희를 부르고 있다.

“나는 약탈자들과 범죄자들을 형사사법제도로 다룰 것이지만, 내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앗수르를 사용했던 것처럼(사 10:5-6) 그것조차 목적이 있다. 결국에는 내가 앗수르의 행위 때문에 앗수르를 심판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더 깊이 보고 나의 치유의 손길이 미국 흑인사회에 이르게 하기를 원한다. 다른 답은 없다. 내 음성을 들으라, 다른 답은 없다!’ 너희가 내 몸이 되려느냐? 너희가 내 손이 되려느냐? 내 마음이 저들 때문에 상하는데 너희 마음도 그러하냐?

“내가 왜 앞으로 올 부흥을 예언하는데 캔자스시티 치프스(Chiefs)의 상징을 사용했겠느냐? 추장(chief)들은 미국 원주민들, 억압받는 공동체, 상하고 가난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미국 원주민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원한을 품고 있는가? 예속이 합법이 된 이후로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는가?” 답은 간단하다—치유가 있을 때까지.]

“너희가 부흥을 원한다면, 너희는 너희 동네와 고급 주택지를 떠나야 할 것이다. 너희가 가진 부와 경험을 너희가 속한 곳의 사람들이 아닌 이들과 나눠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느냐? 너희의 삶은 너희에게 무엇이냐?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전 6:20).

“히브리 선지자들의 외침은 무엇이었느냐? 그들의 마음을 보라. 그들이 정계에 들어섰을 때, 그것은 내 말을 풀어놓고 불의에 대항하여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상한 자들, 고아 된 자들, 아버지가 없는 이들, 과부들을 대신하여 외쳤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 선한 사마리아인, 거지에서부터 문둥병자와 창녀까지 접촉할 수 없는 이들이었으나 예슈아께서 만지셨던 모든 이들.]

“너희는 너희가 계속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내가 선동가들을 없애주기를 원한다. 내 말을 들으라. 나는 너희를 안락한 삶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도록 불렀다. 그리고 너희는 그 안에서 참된 위안을 찾을 것이다. 선동가들은 너희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깨우기 위해 보낸 내 종들이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면, 내가 그 선동가들을 다루고, 너희가 열망해온 소생케 하는 바람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너희가 찾던 부흥 ‘패키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보내려는 부흥 ‘패키지’다. 나에게 너희가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내’가 되어주기 위한 것이지, 그들이 왜 그들이 받는 것을 받을만한지 구실을 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일어나겠느냐? 예슈아께서 가난한 모든 이를 위해 울며 중보하시는 곳으로 부르는 하늘의 부르심을 향하여 일어나라. 너희는 그들을 내게로, 구원과 자유로 불러 오려느냐?

나의 리더들은 어디 있느냐? 나의 활동가들은 어디 있느냐? 주되 빼앗지 않고, 사랑하되 미워하지 않는 나의 거룩한 선동가들, 약탈 반대자들은 어디 있느냐? 나는 너희 없이 이 일을 할 수 없다(롬 10:14). 내게는 대안이란 것이 없다. 너희는 내가 올 때까지 이 땅에서 나의 대변자다. 하나님의 백성들아, 일어나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누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부름에 응답하려느냐?

“너희는 성경적 가치들을 위해 싸우지만 나는 그것을 살아내라고 너희를 부르는 것이다. 너희의 그 모든 싸움에도 불구하고, 너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 너희는 날마다 입지를 잃고 있다. 왜냐? 너희가 말 앞에 수레를 두었기 때문이다.

“신약의 지상명령이 광장에서 성경적 가치를 위해 싸우는 것이냐? 아니면 삶을 바꾸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냐? ‘그런즉 누구든지 메시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내 종 바울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성경적 가치를 전했느냐?

“메시아께서 이방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시켜서 이루어 놓으신 것 밖에는, 아무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적과 이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메시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메시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롬 15:18~20, 새번역)

“그의 메시지는 예수였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경적 가치를 전하는 것은 기름 없이 차를 운전해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먹힌 적도 없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순전하고 흠 없다고 받으시는 종교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성경적 가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약 1:27)이다.”

“그러나 기름은 나의 영의 능력이다. 너희가 능력과 사랑으로,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할 때, 너희가 깨어진 세상에 내 마음을 참되게 대변할 때, 너희는 결실을 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기쁘게 나의 가치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저는 말할 것이 더 있다고 느꼈지만, 그 예언을 하려면 아직 믿음이 더 있어야합니다. 미국에 한 친구가 있는데, 그와 그의 아내는 매우 성공했고 장성한 자녀가 세 명 있습니다. 8년쯤 전에 그들은 십대가 되기 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를 데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멘토링을 위한 방문일 뿐이었는데, 그 아이의 엄마와 그 아이를 돌봐주던 사람이 죽고 그 아이 혼자 완전히 역기능적 환경에 남겨지게 되어, 그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 소녀는 이제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고 예수님도 압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 소녀가 오늘 어디에 있게 되었을지 저는 상상도 못할 것 같습니다!
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은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행동이 말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By | 2020-06-15T13:02:51+00:00 6월 15th, 2020|분류되지 않음|미국을 향한 예언적 말씀에 댓글 닫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