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의 예슈아: 여호와, 예수, 그리고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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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의 예슈아: 여호와, 예수, 그리고 심판

예수라는 이름은 원어로 예슈아 ישוע입니다. 예슈아는 여호수아, 원어로는 예호슈아 יהושע를 축약한 형태입니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의 여호사밧, 예호샤팥 יהושפט 처럼 예호슈아는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예슈아의 이름 안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던 것처럼, 예슈아께서는 심판하고 전쟁하고, 열방을 다스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19:11~16).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보면, 어마어마한 재앙들과 심판이 있는데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우리의 신학이나 이해에 끼워맞출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지막 때의 사건들과 출애굽 사건 사이에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랍비들은 “마지막 구속은 첫 번째 구속과 같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메시아의 강림과 세상의 끝은 출애굽기에서 볼 수 있는 패턴에 근거한 것이 될 것입니다. 모세와 메시아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전 제국을 멸하고, 그들로 회개하게 하며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에 격변의 재앙들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들을 내리는 권세를 부릴 한 사람(모세)을 사용하셨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재앙들에 사용된 단어는 마콭 מכות인데, ‘타격하다’ 혹은 ‘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열 번의 강타’로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재앙들은 “파괴자”의 공격이라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12:13). 그러나 본문의 강조점은 그 재앙들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고 하나님의 인간 대리인에 의해 실행되고, 예정된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각 재앙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직접 명령을 따르고 있는 모세와 아론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들이 마지막 때에 다시 있을 것입니다. (댄 저스터의 책 <유월절, 계시록을 여는 열쇠> 참조) 바로 제국의 이미지를 가진 악한 적그리스도 제국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국을 멸하시기 위해 어마어마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재앙들에는 세 가지 주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1. 악인들에게 임박할 천벌을 경고
  2. 죄인들이 회개와 구원에 이도록 인도
  3. 성도들을 더 큰 믿음과 순결에 이르도록 단련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이 그 심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일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준엄하심 모두를 이해해야 합니다( 11:22).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지식을 넓혀야 합니다. 마지막 때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마지막 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은 이후 장들의 모든 사건보다 앞서, 예슈아께서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 줍니다.

예슈아께서 태어나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께서 영화된 육체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오셨고 그들에게는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계시가 더 필요했습니다( 24:13~15).

출애굽기 6:1~8에서도 비슷한 일이 모세에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람들이 그분을 엘 샤다이라는 이름으로는 알았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는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나라에 대한 심판과 구속을 가져오시기 위해 행하실 대여섯 가지를 나열하시는데, 이것이 그분의 여호와라는 이름의 특성입니다.

우리는 지금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예슈아를 갈릴리 호숫가를 거니시던 사람으로 알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하늘의 군대 장관, 온 땅의 심판자, 하나님의 진노의 집행자, 전능자, 만물을 다스리는 왕, 여호와-예슈아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눈 앞에 있는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예슈아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이해에 급격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밧모섬에서 요한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욥도 회오리 바람 가운데서, 모세도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제자들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와 유사한 일을 겪었습니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의 경험으로 충격을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개인적인 밧모섬과 같은 일을 겪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예슈아를 대면하지 못하고, 어떻게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에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이 일이 일어날 시간입니다. 지금은 절체절명의 변화의 “카이로스” 순간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나머지 사건들을 수용하고 겪을 수 있도록 요한계시록 1을 읽고 이해하도록 합시다.

모세오경과 선지자의 글에서 우리는 여호와-천사께서 이스라엘 밖에 계실 때는 영화로운 거룩한 모습으로, 이스라엘 안에 계실 때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봅니다(<아브라함의 점심 데이트>에서 30번 이상 천사-여호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에 대한 기술 참조).

예슈아께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광스럽고 불 같은 모습이고, 하나는 영화되지 않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초림 때는 평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9:9, 21:1~9). 그러나 재림 때는 불꽃같은 눈의 영화로운 거룩한 모습으로 흰 말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7:13~14, 19:11~16).

우리는 바이러스 유행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3분의 1이 파괴되고 인류의 3분의 1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 9:13~18; 16:1~9)!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요한계시록의 예슈아를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슈아께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 그분을 오해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서 두 번째 임하실 때 그분을 오해할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신학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때로 넘어가고 있기에 우리는 마지막 때의 예슈아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집트에서 바로를 대하기 전에 모세는 여호와의 능하신 심판과 구속의 방법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때를 맞닥뜨릴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여호와-예수”이신 예슈아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능하신 심판과 구속의 방법도 예슈아의 이름 안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악한 바로 제국과 맞서도록 모세와 아론을 보내셨던 것처럼, 여호와-예슈아께서는 마지막 때에 짐승의 악한 세력에 대항하도록 우리를 보내십니다( 11:8). 여호와의 이름의 권세는 예슈아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의 외침과 출애굽의 순간을 다시 이어가도록 합시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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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20-04-27T14:48:19+00:00 4월 27th, 2020|분류되지 않음|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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