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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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사도적, 그리고 예언적 은사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 성경적 균형을 추구합니다. 그러한 균형을 찾기 위한 열쇠 중 하나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예언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사랑은 가장 큰 계명입니다. 계속해서 사랑할 때 우리의 사랑은 점차 더 성숙해집니다. 그러한 성숙의 경험 가운데, 우리는 더 큰 인내와 겸손을 갖게 됩니다.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지를 더 깨닫게 되죠. 우리는 다른 이들이 우리가 모르는 바를 알고 이해하리라는 사실에 여지를 두게 되죠. 이러한 태도는 연합을 보존하고, 분열을 방지해줍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예언한다”는 표현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지속된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이들, 혹은 예언이 완전히 맞지 않으면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보는 이들에 관하여 우리는 신약의 예언에 본질상 부분적인 일정 수준의 해석과 이해가 수반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합니다 (고전 13:12).”

그래도 우리에겐 예언이 정말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거듭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언적 계시를 나눌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고전 14:5, 6, 24, 31, 32, 39). 예언이 부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참된 예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예언들을 “시험하고 좋은 것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살전 5:21). 모든 예언적인 것이 완벽하고 완전하다면, 좋은 것을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거부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신약에서 한 사람이 회개하여 예슈아를 믿게 되면, 그의 영은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양심을 통해 (롬 9:1) 사람의 영과 함께 증거할 수 있습니다 (롬 8:16). 사람의 영과 양심을 통해, 생각이 사람의 마음에 이르는데 그 출처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롬 8:6, 사 55:8-9).

이것이 정상적 신약 예언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통한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양심을 통해 우리의 영으로 전해져,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에 임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때, 그것을 예언 혹은 신성한 지혜라고 봅니다.

반면 예언을 믿는 이들은 표현의 “수위를 낮춰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예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외적으로 임하는 명령이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에 영감을 주시는 말씀과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내적 이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겸손한 언어, 자세, 어조와 음량, 제스처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언하는 방식은 우리가 정의상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비은사주의 계열”은 신약의 신자들이 진짜로 예언할 수 있다는 사실과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이 은사가 예슈아의 재림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은사주의자”들은 우리가 예언하는 바가 부분적일 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어떤 신약적 입장을 취하고 있든, 우리가 아는 바는 모두 부분적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이들에게서 배울 여지를 갖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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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18-01-09T03:03:40+00:00 12월 28th, 2017|분류되지 않음|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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